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의 '중간지식'의 오류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철학자/신학자인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의 강연 내용 일부를 'On the Road to Damascus(다메섹으로 가는 길/이하 "다메섹님")'이 요약한 글을 소개합니다.

제가 이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글의 내용이 '하나님의 예지'와 '자유의지'의 모순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설명이 가지는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적하려면 먼저 내용을 알아야겠지요?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니 먼저 다음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질문 5 최근에 Dayton과 토론하신 것을 봤습니다. 주제는 "악이 하나님을 반증했는가?" 였죠. 왜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시면서 동시에 안 주실 수 없는지는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로 하여금 악보다 선을 선택하도록 강제한다면 그것은 자유 보장이 아니겠죠. 다만 하나님이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실현 가능해보이지 않다 (Not feasible) 는 말은 이해가 안됩니다.

답변자: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William Lane Craig) - 기독교 변증가, 바이올라 대학 탈봇 신학교 철학 연구교수


답변: 가능세계 (Possible world)와 실현 가능한 세계 (Feasible world) 의 차이는 중간지식 교리에 있어 가장 핵심이다. 16세기 루이스 몰리나 (Luis Molina)의 이론에 등장한다. 몰리나에 따르면 하나님은 모든 일어날 수 있는 일 (자연 지식)과 더불어 특정 환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 (중간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가능 세계 (Possible world)를 아신다. 모든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 가능한 곳이 다양한 가능세계들이다. 예를 들어 어떤 가능세계에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것이며, 또 다른 가능세계에선 베드로가 똑같은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중간지식은 사람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발휘될지를 아는 지식이다. 예를 들어 어떤 C라는 환경이 있는데, 이 C라는 환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지식이다. 이러한 중간지식은 많은 가능세계를 없애버린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C 정도의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것을 '중간지식으로서' 아시는 하나님이기에, 똑같이 베드로가 C 정도의 위협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 가능 세계는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신다.
따라서 베드로가 C라는 환경에서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는 세계는 가능 (Possible) 하지만, 조건부에 따라 실현 불가능 (Not Feasible) 하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강제로 베드로의 마음을 조종해서 배신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하나님이 베드로의 자유의지를 보장하시고자 하는 조건 내에선 실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 중간지식을 근거로 환경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조성 끝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까지 아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유 지식 (Free knowledge)이다.

J.L 맥키는 하나님이 전능하다면 모든 사람이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하는 세상을 창조하는게 가능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알빈 플란팅가는 이에 대해, 물론 본질적으로 가능 (possible)은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옳은 행동을 하도록 만드려면 자유의지를 제한해야만 하고, 따라서 자유의지를 보장한다는 조건 한에서 지금 세상보다 악을 감소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도 실현 가능하지 않을 수 (Not feasible) 있다고 말한다.
인간 창조에 있어서 가장 첫번째 원칙은 로봇이 아닌 자유로운 피조물의 창조였다. 만약 세상의 악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면,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장하면서도 이것보다 더 적은 악을 허용하는게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내야만한다. 입증책임이 무신론자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나(다메섹님)의 의견: 개인적으로 몰리니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성 안에 논리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화시킨다는 점에서 철학적으론 훌륭한 것 같다. 아직 좀 더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자, 이해가 되셨습니까?
별로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니까 이해하셨으리라 믿고, 위 이론의 문제를 지적하겠습니다.


1. 논리적 오류

위와 같은 설명은, 오히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위에 제시된 예를 보자면, 베드로는 C정도의 위협이 가해질 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지식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에 베드로 주변의 사람들이 C정도의 위협을 베드로에게 가할 것인지도 알고 계시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베드로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를 설계하시고, 미래를 예지하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윗 글의 주장이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첫째, 우선 위 주장이 성립하려면 한 가지 증명 불가능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동일한 선택을 한다"는 전제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전제는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증명하려면 동일 인물이, 동일 시간에, 완벽히 동일한 외부자극과 정보에 노출되는 상황을 최소 둘 이상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것은 동일 인물이 둘 이상의 평행 시간을 경험해야 하므로 물리적으로 증명 불가능하고, 이것이 가능하더라도 그 상황이 무한히 반복되어도 자유의지는 항상 같은 선택을 한다는 것을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확률은 높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완전한 증명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전지성은 완전한 지식이 아닌 확률적 지식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즉, 하나님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앎'이 아니라, 높은 확률로 그럴 것 같다는 '추정'을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특정한 환경과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에라도 어떤 선택이든 가능해야 '자유의지'의 개념에 부합합니다. 즉, 베드로에게 C정도의 위협이 가해졌을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야 자유의지의 개념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위에서 주장한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유의지'라는 것은 외부 자극에 철저히 종속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자유의지일까요? 다시말해, 위의 주장을 하려면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위 이론에 맞도록 편협하게 정의해야만 가능합니다.

셋째, 만일 첫번째에서 지적한 그 증명 불가능한 전제에 대해 성공적으로 증명을 해서, "자유의지란 특정 상황에서는 반드시 특정한 선택을 한다"고 확인했다고 치더라도 결국엔 자유의지를 훼손시킵니다. 왜냐하면, 같은 외부환경에 대해서는 항상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중간지식에 의해 역사와 환경을 조성한 신은 사실상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가능성을 배제시키고, 반드시 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도록 강제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것이 여전히 자유의지를 훼손하지 않은 것이라고 억지를 부린다면, 백번 양보해서 그 억지를 받아준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베드로가 죄를 짓지 않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음에도, 반드시 베드로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역사를 창조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만한 정도의 위협적 환경 B를 아실것이며, 어떠할 때에 베드로 주변인들이 B의 정도로 베드로에게 위협적이 될 지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베드로의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로서는 하나님에 의해 강제적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이 없는 환경 C를 제공받았기 때문입니다.


2. 신학적 오류

위와 같이 궁색하고 억지스런 논리를 계속 개발해내는 것은 인본적 사고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전지전능 내지 선택과 예정'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 조차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성경은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에 따라 나타나게 됨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죄의 원인은 하나님이고, 심판의 정당성 문제가 뒤따르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이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드러내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로마서 9:10~23

위의 로마서 구절 중에 서두의 노랗게 표시한 부분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이 인간측의 자유의지나 선택 따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이'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합니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창조자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전적인 권리가 있고, 설령 그가 심판하기 위해 창조하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 아닙니까? 바울이 제시한 토기장이의 비유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단지 인간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이 그토록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심판을 받아도 내 의지와 선택의 결과로 받고, 구원을 받아도 내 믿음으로 받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화시키려는 저러한 철학적 시도들이 언뜻 보기엔 하나님의 의를 변호하려는 기특한 시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죄성과 어리석음이 깔려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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