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오류 1]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레위기 11:20~21)

레위기 11장 20절~21절은, 안티 기독교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도 성경의 오류라고 널리 알려진 본문입니다. 해당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레위기 11:20~21, 개역개정]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로되
21 다만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곤충의 다리가 6개라는 것은 어린이들도 아는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기록하고 있는 성경은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1.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오류라고 결론내리려고 한다면, 석연찮은 부분이 많습니다. 곤충의 다리가 몇 개인지는 알아내기 어려운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죠. 특히,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공간에 거주하는 현대인에 비하면 과거의 인류는 곤충과 훨씬 가깝게 지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레위기가 기록될 당시의 이스라엘은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곤충의 다리가 4개인줄 착각하고 살았다? 이것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레위기 11:21, 개역개정]
21 다만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위 구절을 보시면, 곤충이 사람들의 먹을거리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세례요한도 메뚜기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3:4 개역개정]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와같이, 곤충을 중요한 식량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다리를 4개라고 착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레위기를 포함한 구약의 첫 다섯 성경의 저자로 알려진 모세는, 아기 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왕궁에서 교육받고 자라났습니다. 이집트의 최고 신들 중 하나가 '케프리(Khepri)'인데, 이것은 쇠똥구리 신입니다.


위 그림은 이집트의 벽화인데, 왼쪽에 앉은 신의 얼굴을 보면 곤충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케프리(Khepri)'는 쇠똥구리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리가 몇 개로 그려져 있습니까? 정확히 6개로 그려져 있습니다. 중간의 다리가 작아서 다리가 아닌 것 같다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이집트의 다른 그림인데, 역시 정확히 6개의 다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위 사진은 조각된 쇠똥구리 모습입니다. 쇠똥구리 아래에 사람의 손이 보이는 것으로 추정컨데, 쇠똥구리를 숭배하는 모습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확실하게 6개의 다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레위기가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곤충들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곤충은 그들이 요리하는 주요 식량이었으며, 레위기를 기록한 모세는 곤충을 신으로 섬기는 이집트 문화의교육을 40년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도 그들이 곤충의 다리가 4개라고 오해했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2. 왜 성경은 곤충의 다리를 4개라고 기록했나?

그것은 아마도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6개의 곤충 다리 중에서 4개만 다리라고 인식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잠언 30:28, 흠정역]
28 자기 손으로 지탱하며 왕궁에 거하는 거미니라

위 구절을 보면, 거미가 손을 사용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위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 번역본인 흠정역인데, 개역개정을 포함한 많은 현대 번역본들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잠언 30:28, 개역개정]
28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완전히 다른 번역이지요?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거미' 혹은 '도마뱀'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שׂממית' 입니다. 저는 킹제임스 버전이 정확한 번역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본문에 대한 해석 문제가 궁금하신 분은 다음 링크를 참고해 주십시오.

http://www.kjvtoday.com/home/spider-or-lizard-in-proverbs-3028

제가 보기엔 원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문맥상 '도마뱀'이라는 번역은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해당 구절이 나오는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잠언 30:24~28, 흠정역]
24 작지만 지혜가 넘치는 것 네 가지가 땅에 있나니
25 곧 강하지 못한 백성이로되 여름에 먹을 것을 예비하는 개미와
26 약한 국민이로되 자기 집을 바위 속에 짓는 산토끼와
27 왕이 없어도 모두가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28 자기 손으로 지탱하며 왕궁에 거하는 거미니라 (The spider taketh hold with her hands, and is in kings' palaces)

본문은 지혜로운 4가지를 언급하는데, 미리 준비하는 개미의 지혜와, 바위 속에 집을 짓는 토끼의 지혜와, 단합하여 힘을 발휘하는 메뚜기의 지혜와, 왕궁에 집을 짓는 거미의 지혜 입니다. 그런데 28절을 개역개정(영문은 NIV)으로 바뀐다면 어떻습니까?

[잠언 30:28, 개역개정]
28 손에 잡힐 만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a lizard can be caught with the hand, yet it is found in kings' palaces)

잡힐 것 같은데, 여전히 왕궁에 있는 도마뱀? 왕궁에 도마뱀이? 거미는 자연스럽지만, 도마뱀이라니요? 게다가 도마뱀이 잡힐 것 같은데 안잡힌다구요? 대체 무슨소립니까?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킹제임스 무오설 내지는 킹제임스 유일주의자가 아닙니다만, 현대 성경들은 개판인 번역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거미의 다리 중 어떤 것을 '손'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다음 사진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가지 곤충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6개의 다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쪽 2개의 다리와, 나머지 4개의 다리가 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셨습니까? 일반적으로 2개의 다리는 앞으로 뻗어 있고, 나머지 4개는 뒤쪽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성경은 앞을 향한 2개를 손으로 정의하는 것은 아닐까요?

위 그림 중에서, 윗줄 좌측에서 3번째 곤충은 중간의 다리도 약간 앞을 향해 있습니다만, 그것은 움직이던 모양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윗 줄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의 에메랄드빛 곤충의 중간 다리의 하나가 앞으로 뻗은 것처럼 말이죠. 위 그림을 보시면, 기본적으로 뒤쪽 4개의 다리는 앞의 2개와 달리 뒤쪽을 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이집트의 쇠똥구리 신 '케프리(Khepri)'를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앞쪽 2개의 다리는 앞으로 뻗어 있고, 나머지 4개의 다리는 모두 뒤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부조 조각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앞쪽 2개의 다리는 앞으로 뻗어 있으며, 나머지 4개의 다리는 뒤쪽을 향해 있습니다. 사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실제 곤충의 모습을 정확히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경의 오류가 아니라, 단지 '분류'나 '정의'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오류라고 주장되는 것들 중에는 이런 종류가 여러가지 있습니다. 앞으로 성경의 오류들을 다루면서 몇 번 만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레위기 11:20~21, 개역개정]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로되
21 다만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이와 같이 4개의 발로 기는 곤충들이 있는데, 그 4개의 '발' 중에 뛰는'다리'가 있어서 뛰는 것은 먹어도 된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메뚜기를 먹고 살았던 것이지요.

결론

이 본문에 대한 다른 해석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추정하기 때문에 전해드리는 것입니다. 제 설명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당시 고대인의 사고방식이나,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생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 4개라고 기록된 곤충의 발에 대한 내용이 오류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착각했을 가능성이 없음을 살펴보았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6개의 다리를 알고 있어도 4개의 발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인식의 차이나 해석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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